나의 길을 가련다

Monologue 2004/03/15 19:00



  어릴때는 선택이라 해봤자 하나의 큰 길에서 작은 길들의 연속적인 선택이었다. 허나 지금의 선택은 되돌아 갈 수 없는 전혀 다른 대로를 걷게 되는 것이다.


  실업계 3년동안 학급장을 맡으며 내신도 좋았고 수능도 실업계 다니며 내내 놀다가 100일 남기고 공부한 것 치곤 잘 보았다. (시간이 없어 수학을 과감히 버리고 국어와 영어에 승부수를 띄워 300 을 넘겼으니 대성공이라 할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부산에서는 그래도 먹어주는 동의대 컴퓨터응용공학부에 지원해서 붙었다.

  예전에 중학교때 친구가 인문계 안 가고 실업계를 간다고 해서 말린 적이 있었다. 공부도 잘 했으며 그 친구의 재능이 아까웠기 때문에. 그때 나의 인식이 그랬다. 실업계는 공돌이가 되는 길이었고 인문계를 가야 대학에 붙어 자기 꿈을 실현 시킬수 있는줄 알았다.

몇일간 곰곰히 생각한 후, 나는 진로를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3년동안 새벽달 보며 등교해서 새벽달 보며 귀가하는건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더군다나 내가 원하지 않는 공부를 해가며 꽃다운 10대때를 그렇게 새장속에 갇힌 기계가 되긴 싫었다.

나의 귀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쉽게 말해 놀기 위해서 난 인생에 있어 첫 큰길의 진로를 수정했다. 중학교때 다른 친구들이 더 놀아준 덕분에 부산, 아니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쉽게 붙을수 있었다.

첫 등교를 해서 입학식을 마치고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날 불렀다. 괜히 제 발이 저렸는데 학생이었다면

" 마치고 교무실로 와. "

라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갔더니 반장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여기서 난 갈등 모드.

놀려고 온 고등학교인데 반장을 맡으면 상황이 전혀 달라질 것임은 직접 경험 해보지 않아도 이미 그에 따른 고충은 익히 봐온 상태이다. 허나 난 거절하지 못하고

" 맡겨 주십시오!! "

라고, 거창하게 발언해 버렸다.


지금 돌이켜 보면 고등학교 중요한 시절을 아무 생각없이 방탕한 나날로 보낼수도 있었을 텐데 한 학급을, 50여명을 이끄는 책임자가 되어 고등학교를 시작 했던게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 되진 않았나 싶다. 이후에도 탄력을 받아 고등학교 시절을 학급장을 하며 돈으로 살수 없는 나의 피와 살이되는 귀중한 경험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난 다시 한번 큰 선택의 기로에 당도하게 되었다.

취업을 할 것인가? 진학을 할 것인가?

학교 역사가 꽤 깊어 삼성, 현대등 대기업에 학교 선배들도 중요직에 자리잡고 있었기도 했었고, 대부분 취업은 잘 되는 편이었다. 지금 수원에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고 있는 내 친구들은 입사후 경력이 얼마 안 되어도 2~3천은 쉽게 벌고 있다.


돈.

솔직히 내 가정형편으론 당연히 취업을 해야 했다. 대학을 보내려던 아들이 실업게 진학한다고 하자 집에서도 취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고. 선생님도 나 정도라면 좋은 조건으로 대기업에 취업 할수 있다고 설득 하셨다.

하지만 난 취업을 포기했다.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싶은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중 한명이 아닐까라고 어렸을때부터 생각해오던 거다.

내가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때 스스로에게 격려하는 말이 하나 있다.

' 어차피 한번 살다 갈꺼, 해보고 싶은거 다 해보고 가야 되지 않겠나! '

설사 누군가 내게 엄청난 거액을 준다고 해도 나의 꿈과 바꿀 생각은 없었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내 영혼이 만족할 수 있는 자아실현이었다.

이렇듯 이상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대학으로 진학했고 나의 이런 이상과 신념에 부딪혀 대한민국 남자라면 가야 한다는 군대마저 가지 않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산업체에 힘들게 붙어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의 생각 하나가 바뀌어 갔다.

바로 돈이다.

돈이야 없음 벌면 되고 돈만 보며 달리는 사람이 어리석어 보였고 물질적인 것에 내 꿈을 바꾸는 짓 따윈 하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사회생활하며 (알바를 제외한) 번 돈을 내 돈이라는 걸 느끼기도 전에 사라지니 허무했다. 그저 내 통장이란 것에 내 돈을 모아 볼려고 했었다. 현실은 그런 나의 작은 목표까지도 허락하지 않았다. 돈을 직접 벌게 되면서 생활비로 월급의 반을 줬으며 대학 등록금으로 빌린 대출금을 갚기 시작했고 큰 누나가 빚으로 어려워 해서 돈을 보태주기도 했었다.

물론 집이 어렵다는 건 나 스스로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장남이 짊어질 짐인것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엄마는 집안일은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 때문에 가압류 스티커도 직접 구경해보게 된적도 있다. 아무리 말을 안 해줬다고 하지만 집이 생활비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난 그저 다 큰 어린애에 불과했었다. 사실을 알고 당장 모아둔 돈으로 해결했지만 집안 살림에 가압류 딱지가 붙은걸 보는 그 처참한 기분은 아직까지 잊을수가 없다.

처음으로 이런 나의 환경에 분노했다. 이럴때 잘 태어난 (소위 부모 잘 만나 별 걱정없이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곧 당연히 받아들였다. 이런 푸념 따위야 이런 상황에선 흘러 넘기듯 하는 것이니까. 지금 버는 돈은 그냥 용돈 버는 셈 치고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돈을 머리속에서 밀쳐 낸 것까지 좋았으나 이것이 내 발목을 잡고 놓치 않더라. 나는 또 하나의 선택의 기로에 봉착하게 되었다.


대학과 군대.

일전에 언급한적이 있지만 이 2단 콤보를 끝내는데 적게 잡아 7년이다. 20대 초반 무서울게 없었던 혈기왕성한 그때

" 덤벼라 세상아! "

하던 것이 정신차리고 보니 30대에 세상과 타협하고 있더라 이 말씀. 남자는 서른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있지만 아무렴 20대 보다 나을까. 그때 가서는 도발적이고 도전적이 삶을 살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판단이 앞섰다. 나이를 먹을 수록 ' 뭔가 해야 하는데 ', ' 뭔가 터트려야 하는데 ' 이런 정신적, 육체적 압박감에 시달리지 않을까 싶었고, 한술 더 떠서 처자식까지 있다면? 말 다한거다. 결혼이 족쇄요 그 때부터 남자인생은 끝이라는 말이 실제로 경험 해보지 느끼지 않아도 상상만으로 수긍이 되었다. 120% 확실한 것이 아니고서야 한 집을 먹여 살려야 되는 입장으로써 바르고 밝은 길 놔두고 험하고 어두운 길로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여 이토록 조급하게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좀 더 빨리 갈 길은 없는가. 어떻하면 쉬지 않고 꾸준하게 갈 수 있을까. 일각의 시간도 아까운 이 마당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것은 내겐 여유를 넘어선 게으름이요, 곧 사치이다.

이런 생각으로 가득찬 요즘 후회를 하고 있다. 대학 입학후 1학년은 당연한 듯이 놀기만 했고 2학년도 별 다를게 없었다. 굳이 하나라도 대답하자면 대학가서 만난 사람들. 선배, 형, 누나, 후배, 동생, 친구들. 하지만 이런 것을 조급하게 서두르고 있는, 여유도 없는 '내' 게 대학와서 얻은 소중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 는 나에게 시간을 보상 받아야 했다. 사람, 사물이 아닌 시간에 대한 보상이기에 되돌릴순 없다. 얻을수 없었기에 버려야 했다.

난 학교를 그만두는 것을 생각했다. 비록 2학년 1학기까지 진정 마음먹고 공부하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았지만,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비슷하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이 두번째 이유가 학교를 그만 둘까 하는 고민의 무게를 더 실어주었다.

어떤이가 말했다. 일찍 사회에 나가는 것 보다 대학에서 기초를 좀 더 다지는게 낫지 않겠냐고. 맞는 말이다. 나도 그럴려고 대학을 왔다. 하지만 이제 그럴수 없다. 세번째 이유이자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

바로 돈이다.

이 하찮은 것이 날 비웃으며 날 짓밟고 있는 것이다.

난 이 하찮은 것의 눈치를 보고 이렇게 무릎꿇고 있는 것이다.



무서울 정도로 달려갈 것이다.


지금보다 더 높은곳으로 올라갈 것이다.


피가 나고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죽을 힘을 다해 나아갈 것이다.


이 길의 끝에 이 하찮은 녀석을 밟고 서 있는 나를 보기 위해서라도.


2004/03/15 19:00 2004/03/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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