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Monologue 2003/12/22 18:59



  2003년 12월 11일.

태어나서 3번째로, 가족을 제외하곤 처음으로 문상을 갔다. 친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아는 동생한테 연락을 받고 일을 마치자 말자 달려갔다. 도착해 영정 앞에 분향을 하고 재배하고 상주인 친구와 맞절을 했다. 열마디 하는 것보다 그냥 손을 한번 잡아 주었다.

이미 온 형, 동생들과 밖에 앉아 얘기를 나누다가 11시쯤 여유가 생긴 친구가 우리한테 왔다.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시간이 늦어 동생들과 시험과 일을 나가야 하는 형들은 자리를 떴다. 나 역시 내일 출근을 하기 위해 그럴 생각이었으나 하루 피곤하고 말지 라고 생각하며 안 가기로 했다. 새벽까지 얘기를 나누다 남은 사람이 거의 없음을 확인하고 우린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아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삶에 대한 고찰 정도는 인간으로 태어나 심오하게 또는 친구들과 가볍게도 생각해 봤을 것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어느 오감 하나도 없어진 채, 세포 하나하나와 분리된, 천지 만물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그냥 나는 '없다' 는 것.

한번은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죽는다는 과정까지 가 본적이 있다. 나 혼자 죽는다면 나의 존재에 대해 슬퍼해줄 사람이 있어서 죽어도 덜 서운할 것 같은데 그럴 사람도 없이 그냥 다 죽는다면 얼마나 허무할지. 지금껏 쌓아온 인류의 문명, 인류의 재산, 룰 등이 한 순간에 사라질 거라는게 무지 아까웠다. 어찌해서 또 생명체가 나타나서 또 엄청 수많은 시간이 지나 문명이 생긴다고 해도 우리 문명이 나타날지도 의문이었다. 쉽게 가까운 예를 들자면 내가 좋아했던 야구, 농구 등이 그 들이 만들어 낼지도 의문이고 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 룰 등도 그대로 생길 수도 없을테고. 누가 공을 던지고 반대편에서 누가 방망이로 공을 쳤는데 누가 그 공을 잡아 드리블을 하며 어느 골대에 발로 차 넣는 장면이 나올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세상이 도래하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그렇게 모든 인류가 다 죽는다면 슬퍼하고 아까워하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무' 로 되는 것이다. 무상무념, 시간이 멈추고 언제 누가 살았나, 뭐를 했고 어떤 일이 일어 났는지 할 것도 없이 그냥 이런 만물의 흐름이 무시되고, 지구, 우주의 존재 자체도 '무'가 되어버리고 그냥 아무것도 없는 '무' 그 자체. 어찌보면 죽음이 곧 해방이 아닐까 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더 이상 죽음의 의미와 철학적 고찰을 핑계로 적어 나가다간 죽음의 미학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염세와 회의주의자로 찍힐 것 같아서 이 이상의 해석은 그만두도록 하자.

그런데 주위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면? 만약 가족중 한 사람이 죽는다면?




  죽음.

개인적으로 느껴본 감정에 의하면 사람의 죽음 자체에 대한 슬픔은 크지도 오래가지 않는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오랫동안 오열 하겠는가?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 있는 수천, 수만의 파일 중 매일 지워지는 데이터에 대해 그 주위 친구 파일이나 부모뻘 쯤되는 폴더도 우리들 처럼 '삭제' 에 대해 슬퍼하고 있을 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들은 그때뿐, '삭제' 된 파일을 기억하는 데이터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의 죽음이라 그런 것이다. 자신의 '삶' 이란 이름을 가진 디스크에 한 사람의 데이터가 '삭제' 되면 그 빈공간에 대해 슬픔을 느끼는 것. 그 사람은 삭제 되어도 그 사람에 대한 데이터는 '삭제' 되지 않는 것. 때문에 인간은 죽음에 대해 슬퍼할 수 있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슬픔이랄까.


내가 삭제 되어도

그래도 지구는 돌고 우주는 흘러 간다.


2003/12/22 18:59 2003/12/2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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